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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기록

기록 33

 

 

1. 매일 저녁 무렵이면 수영을 하기 위하여 강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갔다.

그때마다 언제나처럼 검사관 게슬러의 자그마한 집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연하게도 한스는 자신이 3년 전에 무척 좋아하던 엠마 게슬러가 집에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세차례 그녀를 쳐다보았는데 그녀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예전에 그녀는 나긋나긋한 몸매를 지닌 매우 아리따운 아가씨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 큰 처녀가 되어 있었다.

투박해 보이는 걸음걸이와 아이답지 않게 유행을 따른 머리 스타일은 그녀의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놓았다.

길게 늘어뜨린 의상도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짐짓 여성답게 보이려고 애쓰는 그녀의 태도 또한 꼴불견이었다.

한스에게는 그녀의 이런 모습들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미로움과 따스함이 느껴졌던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서글프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훨씬 더 아름답고, 즐거웠으며, 활기가 넘쳐흘렀다.

벌써 오래전부터 한스는 라틴어와 역사, 그리스어와 시험, 신학교, 그리고 두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동화책도 있었고, 도둑 이야기가 적힌 책도 있었다.

자그마한 정원에는 한스가 손수 매달아놓은 절구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이면 나숄트 집안의 현관 앞에 모여 리제의 모험담을 듣기도 했다.

그때는 가리발디라고 불리던 이웃집의 늙은 할아버지 그로스요한을 오랫동안 가도 살인범이라고 생각하며 꿈을 꾸기도 했다.

일 년 내내 한 달에 한 번꼴로 애타게 기다려지던 일들이 있었다.

풀을 말리는 일,토끼풀을 베는 일, 첫 낚시질에 나서는 일, 가재를 잡는 일, 호프를 거둬들이는 일, 나무를 흔들어 자두를 따는 일,

불을 지펴 감자를 굽는 일, 그리고 곡식 타작을 시작한는 일 등이었다. 그 사이에도 틈틈이 즐거운 일요일과 축제일이 있었다.

또한 신비스러운 마법의으로 한스를 끌어당기는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었다.

집이나 골목길, 계단, 곡물 창고의 바닥, 분수, 울타리, 그리고 사람들이나 각가지 동물들이 그에게는 모두 사랑스럽고, 친숙하게 여겨졌다.

이것들은 한스를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비밀의 세계로 유혹했다. 호프를 딸 때는 같이 거들어주었다.

그리고 다 큰 처녀들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노랫말들을 외우려고 애썼다.

대부분의 가사들은 지나치게 익살스러운 나머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더러는 몹시 애절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했다. 그런 노래를 듣고 있자면 저절로 목이 메었다.

 

이 모든 일들이 어느 틈엔가 한스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둘씩 사라져버렸다.

처음에는 저녁 무렵 리제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일이 없어지고, 일요일 아침에 고기잡는 일이 없어지더니

그 다음에는 동화책 읽는 일도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호프를 따는 일과 정원에서 절구가 달린 물레방아를 지켜보는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아, 이 모든 추억들이 어디로 사라져버렸단 말인가?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185-186p

 

 


 

 

 

2. 그때마다 호기심 어린 눈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나긋나긋하고 여성답게 애쓰는 태도를 표현 했다.

훨씬 더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 넘쳤음에도 두통 이외는 알지 못했다.
손수 물레방아를 돌리고 집안만 모험하고
살인을 생각하기도 했다.

일년내내 신비스러운 힘이 끌어당겼으나 헤아릴 순 없었고
처녀가 된 몸은 몹시 애절한 내용을 담고 사라져버렸다.
처음은 없어지고 아침이 없어지더니 읽는 일도 없어지고 말았다.
마침내는 지켜보는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어른이란 단어에 맞춰져갔다.

 

 

 


 

 

 

3. 스스로 하고싶은 일의 부재.

그 공백을 타인이 강요한 것으로 채워나가며

스스로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인격체가 됨을 강요받는다.

 

학교, 교육, 사회성, 도덕성, 지성, 재력, 지위등을 채우는 과정은

일련의 억지스런 성인식처럼 치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평가를 이식하게 되어

그렇게 살지않으면 낙오자라 믿게된다.

 

'스스로 되는 것'

'스스로 강한 것'

이 결여된 채 타인의 욕망에 맞춰진 인간상의 숲에서

타인의 욕망을 뒤집어 쓰지도

한스처럼 벗어나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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