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기록

기록 40






요즘엔 자꾸 눈물이난다. 

호르몬 영향이겠거니, 하면서도 길이나 기차에서 그럴때면 무척 당황스럽다. 

어젠 잠든 남편 옆에서 울었다. 

모기소리에 깬 남편은 내가 숨죽여 훌쩍이길래 감기에 걸린줄 알았다고...

할머니 생각났어? 하면서 꼭 안아주는데. 

이 사람 없었으면 참 고달픈 삶이었겠거니 싶을 정도로 안심이됐다. 

(물론 달래주자마자 잠들더라)


1992년도, 누군가가 찍은 이 마을은 이제 없어졌다. 

최근 남편과 방문한 이 곳,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몇백년 일구어온 농지와

보호수 나무까지 포크레인과 불도저 날 아래 말끔히 평지가 됐다. 


나를 만들었을 엄마와 아빠 방, 

아빠가 생을 마감했던 할매의 방, 

아빠가 죽고 밤마다 숨죽여 울던 엄마의 부엌. 

매년 어린 강아지를 받아내던 창고, 

수십년동안 빨간 홍시를 내어주던 감나무에게도

할매와의 겹겹이 쌓은 기억에도

첫사랑의 이름을 몰래 새겨놓은 기둥에도

강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풀어놓던 우물에도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어디가 내가 살던 곳이었는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정말 아무런 흔적도 없이, 이 곳엔 

벌겋게 드러난 흙과 콘크리트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태어나 중학교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저 사진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나의 집과

그 안엔, 지금도 눈을 감고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한 기억과 물건들이 있었다.

그것들이, 몇번의 날 질에 허연 가루로 부서졌다는게 지금도 믿지기 않는다. 


92년도, 9살. 

여기서 살아 터전을 일궜을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 곳. 

없어진 이 곳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쓰기 >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록 41  (0) 2016.12.09
기록 40  (0) 2016.07.11
기록 39  (1) 2015.06.14
살과 살  (0) 2015.05.19
기록 38  (0) 2015.05.08